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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이 많은 부모 역시 자신보다 사교적인 아이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서는 수가 있으며 예를 들어 내 친구 에스더의 딸 클라라는 즉석에서 쉽게 친구를 사귀곤 했는데 클라라는 엄마가 자기처럼 빨리 다른 엄마들과 사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그들 모녀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는데 클라라는 근처의 공원에 나가 놀고 있었으며 곧 집으로 뛰어와서는 공원에 자기를 괴롭히는 남자아이가 있는데 얼른 가서 그 아이를 혼내주고 그 아이의 엄마에게도 알리러 가자고 자기 엄마를 잡아끌었다.

아이들의 사회적 능력
클라라는 그 애가 집으로 가는 걸 봐서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며 에스더를 잡아끌었고 에스더는 낯선 집에 가서 놀이터에서의 싸움에 대한 시비를 가릴 일을 생각하니 괴로웠지만 클라라는 세상에서 그보다 당연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심지어 가장 능력 있는 부모조차 아이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느끼고 그런 순간이 닥치면 당신이 처음에 했던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그 기억에 의지하는 것은하는것은 당신의 아이가 유치원에 다닌다면 혹은 중학교에 다니는 10대 청소년이라면 아이가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를 돌이켜보면 당신은 그들에게 붙임성 자신감 활발함과 같은 유익한 정서를 많이 심어주었고 설사 아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더라도 당신이 마음속에 있다면 아이는 그러한 자질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고 당신이 어떤 상황에 대해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고 당신의 아이 또한 사회생활에서 분명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고 그러나 아이가 어렸을 때 당신이 해준 것들이 지금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고 부모가 자녀의 사회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경우도 아주 많으며 사회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면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부모는 종종 자녀의 사회적 능력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만약 아이가 전화로 친구에게 거절을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정작 본인은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때 부모는 무력감에 휩싸이며 세상에 저 눈치 없는 것이 퇴짜를 맞고 있는 줄도 모르나 보네 하고 그 순간 부모는 자기 아이가 사교의 무능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갑자기 망각하며 그들은 아이들이 유년기 때부터 버스에서 낯선 사람에게 웃어 보이고 미소를 답례로 받기도 했던 그때부터 이미 친구를 사귈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사실 부모는 긴 안목으로 보면 아이들이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일찌감치 그런 능력을 발달시켜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딸을 낯선 아이들로 가득한 기숙사에 혼자 남겨두고 돌아설 때 당신의 마음속에는 그 아이가 어린 시절에 보여주었던 사교 능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고 그 순간 당신은 그저 모든 게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며 딸아이와 한방을 쓰게 된 친구가 붙임성이 있어서 남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를 만드는 그런 성품이기를 바라는것이고 당신이 13년 전 어느 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면서 반 아이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기를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잘 보살펴주는 다정한 사람이기를 바랐던 것처럼 말이며당신은 자녀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해서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자녀의 사회적 능력을 잘못 읽는 실수를 돌이켜보면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렸지만 당신이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느끼는 것과 아이가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며 하지만 그럴 때 당신은 자신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면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어떤 감정들이 솟아 나오며 어렸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이 아이도 그만큼 속상할까 그때 내가 엄마의 위로를 바랐던 것처럼 그 아이도 내가 다독거려주길 바랄까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데 이러한 이유들로 부모는 종종 자녀의 사회적 능력을 잘못 읽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인데 아이의 사교 능력에 대한 부모의 경험과 아이 자신의 경험은 매우 다를 수 있으며 스티븐은 이제 열여덟 살이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모임에서 자신을 막무가내로 앞으로 밀어내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며 제가 할 말을 엄마가 일일이 일러주면서 꼭 끼어들곤 하셨는데 저도 그 말을 하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땐 정말 미칠 것 같았고 왜냐하면 제가 고맙다는 말조차 혼자 못 하는 아이처럼 보였으니까 막 그 말을 하려던 참인데 엄마가 지적하지 않으면 못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사소한 신호들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갈 때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붙잡아두고 싶을 수 있으며 그런 마음이 될 때 나는 조지 보먼이라는 불교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리려 애쓰며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당신의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맛보는 재회의 기쁨을 빼앗지 말라 하고는 내가 아는 어떤 소년을 떠올렸고 난생처음 부모 곁을 떠나 야영캠프에 참가하게 된 그 소년은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어둠 속에서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곤 했고 다음 날 그 아이는 친구를 사귀었고 때로 부모는 이제는 훌쩍 커버린 자녀들이 부모와 어느 정도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소한 신호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내 친구 하나는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이혼을 했고 아들은 제 엄마와 함께 다른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자 관계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연락을 하기가 더 어려웠지만 내 친구는 언젠가 가족 모임에서 아들이 나비넥타이를 매고 온 것을 알아차렸고 친구는 자신의 대학교 때부터 갖고 있던 것으로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나비넥타이를 만지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그밖에도 부모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애착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지난여름에 나는 3주간의 캠프에서 돌아온 우리 딸을 데리러 갔었는데 몇몇 여자아이들은 부모 품으로 달려가서는 와락 껴안고 뺨을 비벼댔지만 어떤 아이들은 자기 부모를 완전히 본체만체하기도 했고 미란다는 조애나가 캠프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였고 미란다는 느리지만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자기 엄마를 향해 걸어갔고 그 아이는 미묘한 표정으로 차분하고 조용하게 엄마에게 다가갔지만 결국은 엄마에게 몸을 파묻고 코를 비비며 다시 만난 기쁨을 표현했고 아이들이 용기를 내어 집을 떠날 때 가끔은 화가 난 듯한 태도로 애착을 표현하기도 하며 어느 여대생은 한 학기 동안 중국에 유학하려고 집을 떠나기 전날 밤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가겠다고 우기고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가 셔츠를 개서 짐을 싸놓지 않고 그냥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그녀의 속마음은 집을 떠난다는 게 두려워서 엄마에게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려던 거였지만 나는 완벽하게 연기할 정도는 못 되어서 이렇게 성질이라도 부려서 내게 엄마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당연히 부모는 자녀의 이러한 행동을 애착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밉살맞은 행동으로 여기게 되며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은 결코 자녀들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아이들은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으며 아이들이 다 자란 성인 행세를 하지만 그들은 당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으며 부모가 자신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존재임을 알고 있다.

사실 그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비록 자기가 부모에게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부모는 언제나 자기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있어주기를 원하므로 나는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아이들이 전화하지 않더라도 꾸짖지 말고 이사하지 말고 같은 집에서 계속 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말고 직업도 바꾸지 말고 전화기 옆에 꼭 붙어있으라고 항상 조언한다.
출처 : 또래집단 (마이클 톰슨 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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