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의 대처
몇 해 전에 내가 방문했던 학교에서는 서로 신랄하게 혹평하는 문화가 5학년들의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으며 매일 반복되는 흠집 내기 게임에는 같은 반 친구에게 말로써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도 포함되는데 어떤 아이들은 그 게임에서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렇지가 못했고 공격을 받은 아이는 자기가 그 선제공격에 상처를 받지 않았으며 보다 재치 있게 받아넘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순발력 있는 답변을 해야 했다.
집단의 규율
그러면 이번에는 처음 시작한 아이가 상대의 재치 있는 응답에 휘청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게 되며 그는 상대의 응수를 다시 받아쳐야하며 이때 중요한 건 기발함이며 심지어 독창적인 응수에 대해 다룬 두 권의 책이 아이들 사이에서 돌았고 만일 누군가가 한 말이 그 책에 실려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의 성과는 공공연히 짓뭉개졌으며 아이들은 그거 책에 있는 말이잖아 시시해 라고 말하고 교사들은 아이들이 대체 어디서 사람을 깔아뭉개는 말을 조직화된 유혈 스포츠로 생각해낸 것인지 의아해하면서 교실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었으며 도시 사회학자들에게 물어보았다면 아마 누구라도 중산층이며 백인인 이 5학년 아이들이 수십 년 동안 도시의 저소득층 거주지역에서 행해져온 길거리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을 것이고 원래의 게임은 아프리카계 소년들로부터 시작되었고 모욕적인 말은 토스트라고도 불렸는데 거기에는 운율이 맞는 문장으로 상대방의 엄마를 공격하는 것도 포함되었고 이 게임에서부터 초창기 랩이 싹트고 네 엄마는 전투화를 신는다며 아마도 이런 것이 가장 상투적인 모욕일 것이고 너희 엄마는 콧수염이 있다도 그런 것이고 여기서 상대방의 엄마를 공격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핵심은 자신의 창조성과 기지로 대중을 압도하는 것이고 지금은 교외 지역에서도 따라하는 이런 도시 빈민가의 모욕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 최근에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로큰롤이나 랩 음악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예의 바름에 대한 기준이 변화하면서 아이들은 누구나 쉽게 욕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서로에게 모욕적인 말을 해대는 청소년들과 기성세대들을 미디어에서 흔히 접할 수 있으며 만일 당신이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는다면 주중의 한가한 시간에 시트콤 몇 편을 볼 것을 권하며 어른들끼리 가족들 사이에 그리고 특히 청소년기 아이들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 관심을 갖고 보면 우리 아이들은 남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웃기기 위한 방법이고 언어적 공격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방법임을 알게 되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어적인 공격이 청중 앞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인데 텔레비전에서는 상대에게 모욕적인 말을 던지면 관객의 웃음소리가 효과음향으로 뒤따르고 그러니 아이들이 서로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너는 이상한 애야 라는 말은 나는 전에 너 같은 아이를 본 적이 없어 라든가 아니면 너는 우리 집단에 속하지 않아 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고 신발 멋진데 라는 말은 너는 결코 멋진 아이가 될 수 없어 라는 의미고 모두들 이런 식으로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는데 왜 거기에 동정심이 끼어들지 못하는 것일까 남을 놀리는 것이 상처를 주는 일임을 안다면 왜 그들은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지 못할까 그들은 알고 있으며 만일 당신이 그들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그것이 잘못임을 인정할 것이고 그런 일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그들은 안고. 그런 일을 당하면 마음이 상한다는 것도 안고. 그래서 그들은 방어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며 아이들이 서로를 놀리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뒤끝도 없고 악의도 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이들이 비열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어떻게 보든 간에 그들은 그 장면에서 중요한 요소를 놓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놀림은 집단의 규율을 실천하기 위해 일어나고 예를 들어 남자아이들이 서로를 악의적으로 끈질기게 놀리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강인해져야 한다는 규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것일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든 그들이 속한 집단과 다른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보다 심한 놀림의 대상이 되며 거의 모든 집단의 제1법칙 네 또래와 똑같아져라를 그들은 본의 아니게 위반하며 만일 당신이 너무 뚱뚱하거나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거나 사투리를 쓰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남들과 다른 종류의 음식을 먹거나 혹은 다른 종교를 갖는다면 당신은 놀림을 당할 것이고 그리고 당신이 만일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규칙 즉 성별의 규칙을 어긴다면 당신은 정말로 놀림을 당할 것이고 남자다움의 엄격한 기준으로 볼 때 한 남자가 만일 여자 같다면 아주 약간 그럴 뿐이라고 해도 다른 남자아이들은 그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할 것이다.
집단의 법칙
집단의 법칙을 어기는 것에 대한 이런 쟁점은 놀림을 당한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지 아닌지 아니면 그냥 말로써 조금 과격하게 노는 것인지를 기성세대가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주며 그 규칙 중의 하나는 놀림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울보나 고자질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만일 당신이 공부벌레 혹은 겁쟁이라고 이미 낙인 찍힌 상태라면 또 변절자나 밀고자 혹은 어린애 라는 별명까지 얻어 일을 완전히 망치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이런 문제는 부모들을 곤경으로 밀어 넣으며 부모들은 놀림을 당하는 아이의 슬픈 흐느낌을 듣지만 좋은 소식은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곧 기운을 차리고 학교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모욕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낸다는 사실이며 그들은 사회적 수용을 충분히 누리고 있기 때문에 모욕은 사실 그다지 큰 상처가 되지는 않으며 그들은 보호를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록 인기가 없어도 집단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비록 그들이 가진 드높은 사교적 꿈이 실현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리고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때문에 가끔씩 고통을 당하기는 해도 어쨌든 그들은 받아들여지고 상처를 입더라도 그들은 곧 다시 회복하며 설사 사회라는 바다가 폭풍에 휩싸인다 할지라도 그들은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을 지각과 사교성을 가지고 있으나 소수의 몇몇 아이들은 사회라는 바다를 잘 헤쳐나가지 못하며 폭풍우가 그들의 작은 배를 집어삼키고 그들을 바다 밑으로 처박아 버리기도 하며 가끔씩 나는 반 아이들이 한 아이만 집중적으로 괴롭혀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보며 다른 모든 아이들의 극심한 불안과 충동적인 심리를 그 아이 혼자 받아내야 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희생양 역할의 그 아이에게 자신들의 사회적 불안을 투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의 무자비한 거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애는 겁쟁이야 혹은 그애한테서는 냄새가 나라고 말하면서 가엾은 한 아이를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그 아이는 어쩌면 몇 해를 그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며 우리는 그렇게 거부당한 아이들이 의기소침해지고 온갖 종류의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고 학교를 떠나고 특히 외로움에 젖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부가 놀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거부는 집단 전체가 혹은 그 집단 내의 다수가 한 명의 희생자와 대결하고 있다는 점이며 자기보다힘이 센 한 사람에 의해 놀림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집단에 의해 배척당하는 것은 상황이 훨씬 나쁜데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남들이 나를 좋아해주고 존중해주기를 원하고 무엇보다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다.
출처 : 또래집단 (마이클 톰슨 외 2012)